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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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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어르신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천영훈 원장]

페이지 정보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8-12-12 17:47 조회 : 2,978회

본문

치매 어르신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진료실에서 치매를 안고 살아가시는 어르신들을 뵈면서 또 그보다 더 많은 가족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질병이 가장 무서운 이유는 어르신 스스로에게도 좌절과 실망을 안겨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치매 어르신을 돌보아야 하는 가족들에게는 형벌과 같은 부담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많은 가족들이 그러한 고통을 치매 어르신에 대한 사랑으로 감싸고 보듬어 가면서 견뎌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분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때론 울컥하기도 하고 정작 부모님께 소홀한 저 자신을 돌아보게도 됩니다.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의 세계에 들어서면서 경험하고 배운 것이지만 정말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지켜낸다는 것은 훈계와 지적을 통해서가 아닌 정성과 사랑을 통해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헌신과 사랑으로 돌보는 과정에서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은 그러한 헌신과 사랑만큼 깊게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분명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더 고집이 세어지시고 밤새도록 돌아다니시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느끼게 되는 절망과 암울함은 돌보는 가족들의 마음에 또한 깊은 병을 새겨놓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치매라는 병은 어쩌면 우리 부모님이 겪어나가야 할 병이라기보다는 가족들 자신이 겪게 되는 병일지도 모릅니다.

진료실에서 처음 치매를 진단받게 되는 어르신의 가족들에게 저는 제일 먼저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니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앞으로 어르신께서는 나빠지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전의 모습을 되찾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노력해서 어르신을 치료적으로 잘 돌보아드린다면 어르신께서 가진 건강한 모습들을 보다 오랫동안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치매라는 병의 가장 절망적인 특징은 이제 내리막길로 들어섰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어르신을 모시고 내리막길을 같이 따라 내려가야 할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섣부른 절망이나 근거 없는 기대보다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마음을 가다듬고 용기를 가져보는 것일 겁니다. , 이제 아랫배에 힘을 주고 심호흡도 하고 멀리 내다보아야 합니다. 어르신께서 조금 좋아졌다고 환호할 일도 조금 나빠졌다고 당장 절망할 일도 아닙니다.

섣부른 기대도, 섣부른 절망도 가족은 물론 정작 치매를 앓고 계신 어르신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접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의 사랑과 정성으로, 내 모든 희생을 통해서 치매에 걸린 어머님을 돌보겠노라는 욕심입니다. 어르신을 돌보는 데는 당연히 사랑과 정성, 희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인정해야만 하는 진실은 그러한 사랑과 희생이 치매 어르신의 상태를 되돌릴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돌보는 가족이 정작 자기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고 무조건적인 정성과 희생으로 치매 어르신께 매달리는 것은 모든 시도를 무산시키는 치매라는 병의 특성상 절망과 좌절만을 되돌려 줄 뿐이며 그로인해 돌보는 가족 자신의 삶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정작 자신의 삶이 무너져버린 가족이 치매에 걸린 어르신을 잘 돌볼리는 만무합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희생을 했는데도 돌처럼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더 안 좋아지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고 때론 분노의 감정이 들기까지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치매 어르신을 모시는 가족들은 우리의 사랑과 헌신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한계를 냉정하게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당분간 위험한 내리막길을 어르신을 보듬고 내려가야 하기에 돌보는 나 자신이 더 건강하고 활기에 차 있어야만 합니다. 때론 이유 없이 짜증만 내시고 일거리만 만드시는 내 어머니가 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아픈 어머니를 미워하다니... 하며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운 감정이 드는 것도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한 반응으로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질책하지 말아야 합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내가 미워서 그리 행동하시는 걸까요? 우린 그것이 어머니도 어쩔 수 없는, ‘으로 인한 증상일 뿐이란 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화가 나다가도, 속상해서 울다가도 어머니를 사랑하는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와서 어머니 곁을 굳건히 지키고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치매를 앓고 계신 내 어머니 곁에 필요한 사람은 어떤 순간이건 간에 평정심을 잃지 않고, 365일을 웃음으로 대할 수 있는 예수님이나 부처님 같은 성자가 아닙니다. 치매 걸리신 어머니 곁에 필요한 사람은 때론 같이 짜증내고 같이 울고, 어이없이 화도 내는 인간, 바로 내 새끼인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은 이미 기대 이상의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치매에 걸리신 부모님이 나빠지시는 것은 내 사랑과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원래 그런 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을 이해하고 돌보는 것만큼 어머니 곁을 오랫동안 지켜드려야 할 나 자신을 이해하고 돌보고 위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치매에 걸리신 부모님을 모시고 가야 할 새로운 여행에 고통과 절망만이 놓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아기가 되는 병이 바로 치매라는 말처럼 치매에 걸리신 어머니는 때론 어리광도 부리시고 투정도 부리시며 내게 의지하실 겁니다. 자식 된 우리가 어릴 적 우리 어머니가 날 돌보아주시고 이해해 주셨던 것처럼 이젠 우리가 부모님께 해 드려야 할 차례가 온 것입니다. 나 혼자서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하려 하기에 힘든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시면 어머님을 모시고 떠나는 여행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기관들, 사회적 제도들,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치매 어르신은 우리 사회가 함께 보듬고 모셔야 할 사회의 어른들이시기에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제도와 전문기관들이 존재하며 또 앞으로는 분명 지금보다도 더 많은 사회적 도움이 만들어 질 것입니다.

치매에 걸린 부모님과 함께 내리막길을 걷는 여행을 출발함에 있어서 심호흡 한번 하시고 내 부모님의 손을 다시 한 번 꼬옥 따뜻하게 잡아 주십시오. 부모님과 나 분명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비록 그 길 위에 고통과 실망이 놓여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만나게 될 것들이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부모님 생의 마지막에 내가 그분을 위해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 삶의 커다란 보람이 될 것이며 지금의 고민과 고통까지도 훗날 내 삶 속에 아름다운 색깔이 되어 물들 것입니다. 오늘도 치매 어르신과 함께 하시는 가족들에게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보내드립니다.

[치매센터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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